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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지창
제조사 고려도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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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가격 45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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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지창  

 

근래의 사극에서 조선군은 대부분 삼지창을 사용한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 삼지창이 곧 중국에서 유래된 당파(또는 당파창)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삼지창과 당파는 다른 무기이며, 조선시대에 삼지창이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다는 증거도 없다. 날이 3개 혹은 4개 달린 창은 원래 농어업이나 수렵도구에서 발전된 무기이며, 우리나라의 경우

이미 삼국시대부터 갈래창이 발견된다, 하지만 창날 끝에 미늘이 달려 있거나 날 끝이 부채꼴로 퍼진

대부분의 삼지창은 수렵도구였던 것으로 생각되며, 다만 전남 나주군 신촌리에서 발굴된 백제의 삼지창이나 경주 황남면 110호 분에서 출토된 신라의 삼지창과 같이 가운데의 긴 날 좌우로 거의 직각에 가깝게 2개의 보조 창날이 뻗어 있는 삼지창은 무기로 사용되었음이 분명하다.조선초기의 기록인 <<국조오례의>> 군례서례에는 이 삼지창이 극 戟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되어 있다. 극은 삼지창의 일종이며, 길이가 1장 6척(336cm)으로, 임진왜란 이후에 중국에서 전래된 당파보다 훨씬 길고 아래에 모철이 달려 있으며, 나무자루는 붉게 칠하거나 검게 칠했다.

조선후기의 삼지창은 주로 국왕의 의장행렬이나 관아의 의장물로서 사용되었다.

이 시기의 반차도를 보면 용기 龍旗 의 깃대는 길이가 5m가 넘는 긴 삼지창이었으며, 독기 纛旗 는 그보다 조금 짧은 삼지창을 사용했다. 그 밖에도 행렬도나 반차도에도 삼지창이 등장하는데, 이 삼지창은 그 자체의 실전적인 효과보다는 홍살문 위에 달려 있는 삼지창과 마찬가지로 군왕과 관아의 권위와 위엄을 상징하는 상징물이었다. 관아에서 사용하는 삼지창은 나졸들이 문을 지키거나 죄인을 추포할 때 사용했는데, 이 또한 실전적인 무기하기보다는 관아와 포졸의 신분을 상징하는 의장에 가까웠다. 한편, <<만기요람>>을 보면 삼지창의 가격은 요구창, 당파와 마찬가지로 쌀 4석5두 인데, 이는 일반 창의 가격인 쌀 2석의 두 배가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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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품목은 도검 소지 허가를 받으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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