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한국의 전통도검 제작소 고려도검 고려전통기술(주) 2023-09-27 13:56:58
admin 조회수 : 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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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검 #진검 #검도 #방송소품 #전통무기 #박물관 #영화 #소품 #일본도 #삼정검



한국의 고려도검은 어떤 회사 인가?



2001년 도검 판매업으로 시작하여 2006년 공장을 갖추고 도검 제조업을



시작합니다.



이때 이** 장인을 공장장으로 시작하였다.



위 장인은 신*도검이란 이름으로 부천 지역에서



장식조각가인 **도검과 동업을 하였는데



그땐 우리가 판매업을 할때 하청을 주든 기업인데



동업하는 두사람이 맘이 맞지 않아서



자주 싸우고 술도 많이 마셔서



생산 속도 가 아주 느린 편이었는데



고려도검이 제조업을 시작 하니 이** 장인이 와서 공장장 하길



원하여 그때 부터 고려도검 재작소 와 판매소 가 각각 다른



사업자 명의로 시작을 했다.



이때는 순수히 그냥 도검과 가검을 만들었다.



방송소품이 규모있는 관련 사업인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생산제품은 모두 이** 장인 (공장장) 에게 맡겨 졌는데



술도 많이 마시지 않고 직원들과 열심히 일해 주었는데



판매업소와 별도 직원은 3-4명 수준 이었다.



그당시 본인은 군에서 퇴직하여 나와서 이사업을 판매업부터



시작하였는데 검도는 군에 있을때 부터 하여 고단자 였으나



제작은 잘 몰라서 현재 있는 다른 도검제작의 도검을 바탕으로



모양을 디자인 설계해서 만들었다.



당시 해동검도가 흥하는 시절이나 진검 이나 가검이 잘 팔리는 시절이라



사업은 잘 운영 되는 분위기 였고 직원들도 열심히 해주었다.



그당시 우리의 수준은 대부분의 다른회사와 마찬가지로 단조검신을



만들진 못하고 강철판을 잘라와서 산소 아세틸린으로



쇠를 달구고 물에 넣어 급랭하는 편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것이 보통 특수강 도검 이라고 하는데



잘 휘지는 않지만 날이 잘 바스러 지고 충격 흡수력이 전혀 없는 것이 특징이다.



본인은 그당시 일본검도 두가지 류파를 수련하여 사범 수준에 이르게



되어 검도 대회 참석차 일본 동경에 자주 가게 되었는데



우연히 일본도검 이란곳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실지로 일본의 명검들을 직접보게 되었는데



예술적인 검신 하몬 하다 니에등을 첨 보게되었다.



아울러 얼마나 정교하고 세밀하게 만들었는지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동안 실지로 일본도검 본적도 없어면서 우리도검이 일본도 못지 않다로



떠든 것이 부끄러웠다.



그래서 직원들에게 일본도 가 이렇더라 하면서



수준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 하였지만



우리 직원들은 본적도 없는 일본도의 수준에 관심도 없었으며



종전대로 편하게 만들고 싶은 생각 뿐이니



나의 말이 아마 잔소리 로 들렸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하나 있는 아들을 일본 명 도공을 찾아서 제자로



보내기로 맘먹고 명성 있는 도검 대장장이를 찾아나서게 되었다.



아들은 한국의 기술대학 폴리텍 대학교에서 기계설계를 배웠고



아버지가 이일을 하니 관심을 가지고 군 전역 하고 와서 우리 공장에서



3-4년 근무를 하였는데



우리나라 장인 대부분 그렇듯이 자기의 기술을 밑에 사람들에게



알려주지 않아서 기술의 승계나 발전이 없었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본다" 는 생각으로 나는 아들을 설득하여



일본 큐슈를 대표 하는 명 도검장 마츠바 이치로 선생의 제자로



아들을 보내게 되어 5년 동안 직접 사사를 받게 하였다.



일본에서는 대학이나 정부기관에서 운영하는 도검 학교가 있어서



기초부터 차근이 내실있게 배워가는 반면



우리는 특별한 교육기관도 없고 철공소 수준의 약간 상회 하는 수준으로



도검을 만들고 있었는데 큰발전이 있을수가 없었고



실력이 없는 대부분의 한국 도검장들이 말로는 8단 수준이었다.



아마 일본 같이 기술을 중요시 않고 그림쟁이 옹기쟁이 대장쟁이로



천한 직업으로 생각하고 가난하고 천민인 사람들이 이일을 하니



자기 자식을 이런일 안시키고 싶다는 사람이 대부분이니 대를 이어 이일을



체계적으로 하는 사람도 없었다.



아들 준기를 제자로 받아준 마츠바 선생은 규슈 미야자기현 휴가이에



백제마을 옆에 사는데 아마 백제계 유민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데



생긴것도 한국 사람 같고 본인이 말하지 않으니 알수는 없어나



일본기술이 한국으로 빠져 나갈까 감추지 않고 정말 성심 성의껏



아들 준기를 지도 해주었다.





일본은 시골에 하보면 생활이 한국보다 못한데



전기도 100볼트인데 잘 들어오지 않고 집도 왜정시대때 지은 적산가옥에



살고 바닥은 오래된 다다미에 세균도 많아서 두드러기 가 많고



새벽에 5-6시 노를 가동하면 저녁 8시 까지 일한다고 하니



아들 문준기 도공은 특공연대 군대생활보다도 힘들었다고 한다.



그래도 회사가 잘 되어 2006년 대전시 대화동 에서 문평동으로



확대 이전 하게 되었다. 물론 세든 것이지 이공장을 살 형편은



되지 못했다



이때는 아들이 일본에 도검 유학 가 있을때 극한 직업의 세계에 우리 공장이 나오기도 했다.



위 사진은 고려도검의 두번째 공장 으로 규모가 이전보다 4배로 크지게 되고 공장내에 연구실도 두게 된다.



물론 고려도검 본사는 유성구 신성동에 그대로 판매업으로 자주 잡고 있었다.



그리고 본인도 오사카에 소속된 일본 검도 한류파에 6단이 되고 토쿄 한류파엔 4단 요코하마의 한류파에 5단등



검도 수련도 열심히 했고 우리도검을 구매한 고객들에게 검도베기의 기초를 가르키는 여유도 갖게 되었다.



한국에서 좋은 검도류파가 많은데



그를 부정한 것이 아니고 우리제품을 사간분 들께 발납도 와 "팔방베기" 를 가르켜서 다치지 않고



칼에도 손상을 주지 않는 수준의 기본만 가르켰다.



그런데 일부인 들은 왜 일본 검도 하느냐 왜놈의 앞잡이나?



일본도검은 약해서 쓰레기 수준인데 뭐하러 일본 가서 검 만드는 것을 배웠냐?



라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나는 군출신으로 포병 장교 였다 . 나는 81년도에 포병소위로 임관하였는데



105밀리 155밀리 대포가 6.25 때 미군이 사용하는 것이고



소총도 지금은 박물관에서나 볼수 있는 M1 이었으나



박정희 대통령께서 방위 산업에 힘써서 지금은 한국무기가 최고 라고 하듯이



일본이 잘하는게 있어면 가서 배워와서 우리것을 만들면 되는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그들로 우리 백제의 도검기술을 배워서



오늘날 셰계 최고로 여기서 일본도를 만들고 있는것이다.



나는 의병장문석봉 의 후손으로 구한말 명성황후 시해소식을 듣고



유성현감이면서 동학군을 정벌 하라고 토벌군책임자로



주어진 부하들을 설득하여 공주 관찰사 에 주둔 하든 일본군대와



전투를 벌였으나 발전된 총을 가진 일본 군대에 창과 활 조총등로는



이길수 없어 대패하고 포로 되어 고문 받다가 돌아가셔셔 지금은 대전 국립묘지



독립유공자 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조선검술을 먼저 배웠어면 좋았을텐데 왜놈의 검술을 먼저 배운것을 죄송히 생각하나



우리 무술을 하는 사람들을 존중하고



검도대회의 장소및 후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그리고 정부과제로 큰 지원을 받게 되어 최신설비의 공장으로 다시 이사하게 된다



두번째 공장인 문평동에서 대형 화재가 나서 공장건물주가 더 이상 불피는 일을 못하게 하여



어쩔수 없이 세종시전의면 어천길 89-28로 새땅사서 건물 증축 하여 이사를 가게 되었다 2019년



이공장은 전체 평시 주변산 포함 13700평 공장용지 3700평으로 규모가 큰공장인데



내부 증측 설비에 무려 5억이 들고 비용의 반은 우리돈과 반은 은행융자를 얻어서 공장 공사를



시작 하였다.



나의 꿈은 김홍도의 전통 대장간과 전통무기 박물관 미술관 도서관등을 보러 전국에서 많이 오고



전통도검 및 전통활로 체험하는 곳을 운영할 생각이다.



이미 진로체험 학습을 운영시작을 했다.